2010년 11월 3일 수요일

우리나라 대학교육. 나는 실망했다.

대학을 늦은 나이에 입학하면서 가졌던 기대감이 있었다.

외국 친구들은 "읽을 책이 너무 많다." "책 읽다가 시간이 다 간다." "똑똑한 애들이 너무 많다." "고등학교는 그저 연습이었다." 등등 대학생활은 하루하루가 책과의 전쟁인 것처럼 말을 해주었다.


나도 은근... 이런 것들을 바랬다.

 

'아..나도 대학에 가면 미친듯이 책을 읽게 되겠구나.'

'나도 다양한 방면의 학문을 접해보면서 여러 교양들을 쌓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다른 이들을 만나 그들을 통해 배우고 또 변화되어질 내 자신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히 컸다.

토론과 토의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성찰하고 같은 주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다양성을 키우는 것. 내가 가지고 있던 대학교육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대학 수업은 이런 것들이 아니였다.

먼저... 토론수업이 너무 적음에 크게 실망했다.

 

토론수업이 있다고 해도...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점... 또 다른 실망이었다.

 

아래는 요새들어 더욱 화재가 되고 있는 마이클 샌더(하버드 대학교) 교수의 강의모습이다.

 

법대 강의 같지만 실재로는 교양학 강의이고..

정의(Justice) 에 대한 수업이지만...    (수업링크: THE MORAL SIDE OF MURDER)

교수는 일방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정의에 대해 강의하지 않는다.

교수는 한가지 예시를 들어주고... 그 예시에 대해 학생들간 자유롭게 토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이런 식이다.

한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면... 교수는 "좋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며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면... 또 다른 학생이 자신의 의견을 발표한다.

 

이는 마치 고대 그리스 대학의 모습과도 같다.

 

(아테네 학당 벽화: 사진 중앙에 있는 두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며 학문을 쌓았던 그리스 대학.
이들의 학습 방법은 책과 토론 이었다. 독서를 통해 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키우고 지식을 배양한 후 이를 다른 이들과 이야기 해봄으로써 자신이 찾지 못한 모순을 찾아내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예일대 철학사 수업의 모습이다.
컨버스와 청바지를 입고 장난스럽게 책상에 앉아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의 모습도 인상적이지만..
우리나라와는 현저히 다른 수업 형식이 더욱 큰 충격이다.
수업 첫시간. 교수는 저렇게 책상에 걸터 앉아 질문을 던진다.

"철학. 여러분은 철학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나라에서 철학사 수업을 한다고 하면.... 첫 시간에 우리가 배우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철학의 역사... 철학의 연대... 철학의 탄생... 이런 것부터 배우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철학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 탄생되었고 유명한 철학자는 누가 있었고 그 사람이 무엇을 주장했으며 그 다음에 나온 사상은 이런 사상이고 언제부터 언제까지 이 사상이 큰 흐름을 이끌고.... 등등.


우리가 도서관에 마련되어 있는 책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내용들을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업시간에 배우고 있다. 우리의 교육은 일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어느덧 이런 수업이 "학습"의 방법이 되었다.




물론 이런 식의 학습을 탈피해보고자 노력하시는 교수님들도 여럿 계신 줄로 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토론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너무 없어 토론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이건 교육자 만의 문제가 아니요 우리 학생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족보를 구해가며 쪽집기 공부를 하려 하는 학생들.

책상에 컨닝페이퍼를 미리 만들어 놓는 학생들.
A+ 은 원하지만 A+ 의 노력은 하지 않는 학생들.


우리나라 대학. 나는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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